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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LA폭동 두순자 사건 흑인이 지키던 한국인 마마 홍정복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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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LA폭동 두순자 사건 흑인이 지키던 한국인 마마 홍정복 피살

 

안녕하세요. 오늘은 <꼬꼬무 16회> LA폭동 관련 내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6년 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일주일간 무법천지로 변했습니다. 방화·약탈·폭행·총격 사건으로 인해 총 63명이 사망하고 2300여 명이 다치는 사건이었는데요.

 

약 10억 달러(한화 1조원)의 재산손실이 일어났던 그 사건. 한인 이민 역사상 가장 큰 아픔으로 기억되는 LA폭동 사건의 발단은 우연과 필연의 결합물이었습니다.

 

LA폭동 사건의 발단 <로드니 킹 사건>

1991년 3월 3일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소속의 백인 경찰관 4명이 210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과속으로 달리던 흰색 현대 포니엑셀 승용차 1대를 추격전 끝에 세우고 범인을 현장에서 붙잡습니다.

 

경찰은 운전자 로드니 킹을 끌어냈지만 그는 경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난폭하게 행동하고 경찰은 이에 폭력으로 대응합니다.

 

당시 경찰은 킹이 마약인 PCP를 복용하고 매우 거칠어진 상태였다고 주장하는데 킹이 체포된 지 며칠 후 여러 번 마약 검사를 실시했으나 모두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킹은 당시 강도, 폭행,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가석방 된 상태였는데, 만약 자신이 과속으로 잡힐 경우 가석방 조건에 걸려 도로 수감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거칠게 행동했다고 밝혔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킹은 그대로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는데, 이 장면을 인근 주민이 비디오로 찍어 방송사에 제보를 하게 됩니다. 결국 3월 15일에 킹을 구타한 경찰관 4명은 기소되었고, 7월 9일에는 경찰 위원회가 과잉폭력 인정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경찰관이 기소되고 재판으로 이어지면서 사건은 잘 해결되는가 싶었지만 4월 29일 발표된 판결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로드니 킹>을 과잉진압과 폭행한 경찰관 4명 중 3명은 무죄, 1명은 재심사 결정이 난 것입니다.

 

흑인들은 재판 결과에 분노했습니다. 그동안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차별받던 문제가 한꺼번에 폭발하고 만건데요. 일부 시민들이 불만을 품고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폭동으로 변해버립니다.

 

흑인들은 지나가던 백인 운전자들을 차에서 끌어내려 구타했으며 가게를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LA폭동 초동진압 실패

방화와 약탈이 TV로 방송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게이츠 총경은 정치자금모집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느라 자리를 비워서 초동진압 시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폭동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흑인들과 히스패닉 갱단들까지 무장하고 합세하자 경찰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번지게 됩니다. 결국 조지 부시 대통령은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요.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육군 병력 6천 명과 다수의 험비, 트럭, 연방 육군 제7보병사단 2천 명과 제40보병사단 헌병중대, 미합중국 제1해병사단 병력 1,500명과 제1경기갑정찰대대와 LAV-25 장갑차 투입 명령을 내렸으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아예 제82공수사단 공수부대 대대를 18시간 안에 배치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뒀습니다.

 

코리아타운과 LA폭동

폭동이 발발한 지점과 그 인근에는 수많은 코리아타운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의 대처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폭동을 막기 위해 백인 거주 지역으로 가는 길을 완전히 막았지만 한인 지역으로 가는 길은 그대로 열어 놔 흑인들이 한인 지역으로도 몰려가도록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코리아타운이 LA폭동으로 방화와 약탈로 피해가 누적되고 있지만 경찰들의 보호를 전혀받지 못하자 한인 사회는 자체적으로 자경단을 만들고 무장해 전면 대응하게 됩니다.

 

미국 언론이 집중 보도해 피해를 더 키운 두순자 사건

흑인이 백인 경찰의 구타로 청각장애인이 된 로드니 킹 사건으로 민심이 폭발하던 중, 미국 언론이 갑자기 1991년 3월 16일 15세 흑인 소녀를 강도로 오인한 한인마켓 주인 두순자가 우발적으로 총을 쏴 살해한 사건을 크게 조명합니다.

 

미국 언론의 대응은 비버리힐즈로 이동하던 흑인들의 분노와 경로를 곧바로 인근 지역에 위치해 있던 코리아타운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한인 상점 2,300여곳이 파괴됐고 천문학적인 피해금액이 누적됩니다.

 

당시 경찰은 할리우드 등 백인들이 주로 사는 지역만 보호하고 한인타운 치안에는 손을 놓고 있었는데요. 한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옥상 위로 나서면서 ‘루프 코리안(Roof Korean)’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LA폭동 시절 유일하게 피해를 받지 않았던 홍정복 <마마>

LA폭동 시절 코리아타운 내에 위치해 있지만 한인가게 중 유일하게 폭동을 피한 홍정복 씨의 상점이 훗날 조명을 받게됩니다. 심지어 흑인들이 자발적으로 불침번을 서면서 고대로 홍정복의 가게를 지켜줬다고 합니다.

 

한인타운 대부분이 파괴되고 타버리는 등 쑥대밭이 됐지만 그때 흑인들이 직접 나서서 보초를 서면서까지 지켰던 한 한인 상점 인근 주민들은 그녀를 <마마>라고 불렀습니다.

 

홍정복 씨는 LA에서도 대표적 흑인 거주지역인 사우스 센트럴에서 가족과 함께 작은 환전소 겸 식료품점인 ‘밴네스 스토어’를 운영하던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1971년 미국에 이민을 가 간호사 보조로 일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남편, 두 자녀와 함께 15년 동안 가게를 꾸려왔는데요. 인근 주민이라면 홍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흑인들은 그를 엄마처럼 따랐습니다. 차별을 모르는 따듯한 그의 인성에 ‘마마’라는 별명이 붙었죠. 그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면모가 있었는데요. 친절이 남달랐다는 점입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돼 아이 기저귀와 우유를 살 돈이 없는 여성이 망설이고 있자 홍씨는 가방에 물건들을 챙겨주고 귓속말로 “돈은 다음에 주세요”라 말하고 돌려보냈다고 하는데요. 감동한 이 여성은 이후 약속을 지켰다고 합니다.

 

맥주 캔을 훔쳐 달아나는 청년의 뒤에 대고는 “조심해, 넘어질라”라고 걱정의 말을 건넸고요. 가게를 찾은 한 남성이 생계 보조비로 받은 수표로 술을 사며 홍씨에게 “나머지는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술에 취한 그가 혹여 허투루 돈을 쓸까 걱정한 홍씨는 남성의 집에 전화를 걸어 부인에게 거스름돈을 직접 받아가도록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10대 흑인 청소년들이 우르르 가게에 들어와도 감시의 눈초리가 아닌 부드러운 미소로 맞이해줬죠. 이러니 홍씨의 가게를 한 번이라도 찾은 사람들은 다 그를 마마라고 부르며 좋아하게 됐다고 해요.

 

이러한 사연들은 인근 주민들의 입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지역내 평판 역시 최고조에 달했는데요. 이때문에 LA폭동으로 코리아타운이 쑥대밭이 되자 흑인들과 인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마> 홍정복 씨의 가게를 지키게 됩니다.

 

<마마> 홍정복 피살 사건 LA 시민 분노

LA폭동 후 7년이 지나 LA를 슬픔에 잠기게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홍씨가 1999년 2월 3일 자신의 가게 앞에서 권총을 든 무장강도 2명에게 살해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그의 아들도 다리를 다쳤는데요. 5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홍씨의 장례식은 지역사회장으로 세인트 브리지드 성당에서 치러집니다. 인근 흑인 주민들이 유가족에게 LA에서 홍씨의 장례식을 치르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국내 언론은 물론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등 현지 매체도 당시 홍씨의 부고를 크게 다뤘는데요. 홍씨의 죽음은 LA를 울렸습니다. 장례식에는 대부분 흑인들이 참석했다고 하는데요.

 

같은 달 11일 열린 장례식에서 단골손님이었던 LA카운티 운수국 소속 버스운전사 6명은 정복을 입고 관을 운구했고, 300여명의 흑인과 히스패닉 조문객이 찾아왔습니다. 식장에는 주민들 외에 시의원 등 지역 고위급 인사와 언론사 취재진까지도 몰렸습니다.

 

애써 찾아왔지만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홍씨의 가게에 헌화하며 애도하기도 했습니다. ‘목요일 휴업, 마마 장례식’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홍씨의 가게 앞에는 추모의 꽃다발과 촛불, 성경책, 편지들이 쌓여갑니다.

 

지에는 “당신은 남을 돕는 일을 맡은 천사였어요, 마마”,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등 생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심지어 동네 갱단의 한 젊은이는 붉은 글씨로 “마마, 우리가 살인마를 찾아 대가를 치르게 할게요”라는 쪽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LA시의회는 홍씨를 살해한 범인에 대해 제보하는 사람에게 2만5,000달러(약 3,000만원)의 상금을 지급하는 안을 승인하기도 했는데요. LA경찰은 이후 15일만에 홍씨를 살해하고 금품을 갈취한 용의자를 체포합니다.

 

경찰 측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증언하고 수사에 협조하면서 빠르게 용의자를 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한 흑인 소년은 장례식장에서 “마마는 피부색을 따지지 않고 우리를 인간으로 대우했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내용이 보도되어 LA시 전역을 울먹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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