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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부인 안소영 나이 싱글맘 결혼 아들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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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부인 안소영 나이 싱글맘 결혼 아들 근황

안녕하세요. 오늘은 애마부인 주인공 안소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소영이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새벽부터 만둣국을 요리한 김영란은 자신의 절친이 방문한다며 이름이 안소영 이라고 합니다.

 

김영란은 애마부인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평소에는 조용한 친구라고 설명했는데요. 이날 안소영은 결혼한 적이 없으며 40대에 아들을 출산한 싱글맘이라고 고백합니다.

 

안소영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결혼 아들 학력 데뷔 종교 미혼모


안소영 나이 프로필 고향 학력

 

안소영의 본명은 안기자 입니다. 나이는 1956년 8월 12일 생으로 올해 나이 66세 입니다. 혈액형은 A형이며 고향은 서울 별자리는 사자자리 입니다. 종교는 불교이구요. 결혼은 하지 않아 남편도 없습니다. 미혼모로 아들 황도연이 있습니다.

 

안소영 학력은 정화여자상업 고등학교 졸업 입니다. 안소영 키 161cm이며 몸무게 44kg으로 활동 당시 신체라고 합니다.

 

안소영 애미부인 신드롬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당대 최고 여배우들도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는데, 그 중심에는 '애마부인'이 있었습니다.

 

애마부인'의 여주인공 안소영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스타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자유를 꿈꾸지만 전통 윤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의 모습을 섬세한 연기로 표현하며 당시에는 파격적인 노출연기까지 선보였습니다.

 

이에 안소영은 '애마부인'으로 제18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았지만,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그의 이미지는 단지 에로배우 였습니다.

 

안소영은 고등학생이 되서 극단 신협에서 연극 공연을 하면서 배우에 대한 길을 다진 편이다. 그런데 전혀 내가 다진 것하고는 관계없이 그냥 몸뿐인 배우가 되어버렸다고 토로했습니다.

 

'애마부인'의 이미지가 이렇게 평생 나의 굴레가 돼서 벗어날 수 없게 될 줄 몰랐던 거지라고 고백 했는데요. 그나마 애마부인과 산딸기 등의 작품 출연으로 82년 한 해 5000만원 이상을 번 고소득자로 이름이 알려진 것 외에는 호재가 없어보이는 듯 합니다.

 

영화 <애마부인> 탄생 배경

정인엽 감독은 1970년대에 미국으로 연수를 갔는데 그때 뉴욕 뒷골목의 아트하우스에서 틴토 브라스의 <칼리귤라>를 보며 충격을 받은 뒤 한국에도 제대로 된 에로티시즘 영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귀국 후 그의 프로젝트가 바로 <애마부인>. 마침 등장한 군부 정권의 ‘3S 정책’ 속에서 한국영화 최초의 심야 영화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애마부인>의 노출 정도는 심하게 말하면 시시한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토록 ‘야한 영화’처럼 전해 내려오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위험한 욕망’ 때문입니다.

 

안소영이라는 배우가 지닌 서구적이면서도 그윽한 이미지는 매우 복합적인 이미지로 그 ‘필’을 전합니다. 안타깝게 당시 아무도 그녀의 ‘연기력’ 따위는 평가하려 하지 않았고 오로지 ‘36인치’라는 당대로선 파격적인 가슴 사이즈에만 관심 있었습니다.

 

안소영이 13편의 애마부인 시리즈 주인공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녀가 출연한건 첫 작품 단 하나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애마부인>의 흥행 이후 안소영은 충무로의 장사꾼들에게 지독하게 소마가 되어버립니다.

 

20편 정도의 출연작 중 절반이 1982~85년의 3년 동안 쏟아졌으며 대부분 에로티시즘 멜로드라마였습니다.

 

<산딸기>부터 <탄야>(1982) <암사슴>(1983) <여자가 두 번 화장할 때>(1984) <달빛 멜로디>(1985) 등에선 운명에 끌려 다니는 의존적 여성이 되고 말았는데요.

 

그녀를 잠깐이나마 구원한 사람은 바로 임권택 감독. <티켓>(1986)의 ‘미스 양’을 통해 그녀는 숨통을 트이게 됩니다.

 

안소영이 애마부인 이후에도 단기간에 비슷한 영화를 다작으로 출연해버리니 사람들은 배우가 아닌 단순한 애로배우로 인식하게 돼버립니다.

 

단순히 작품만 놓고 본다면 안소영은 일명 <자고나니 스타가 됐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스타였습니다. 결국 애마부인이 극장에 상영 됐을 시기에 영화판은 그녀가 출연한 영화, 그녀가 출연하지 않는 영화로 나뉠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출연 여부에 따라 영화 투자금액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주연으로 17편의 영화에 연달아서 출연했을 정도니,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진 배우였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톱스타 위치에 있던 안소영은 돌연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다양한 루머와 억측이 있었지만 안소영은 의상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밤무대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등 점점 대중의 눈에서 멀어지는 일들을 하기시작하는데요.

 

안소영 미국행 그리고 미혼모 아들

그녀가 미국으로 갔을 때 사람들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라고 지레짐작했지만 도연이는 1997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이 아빠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평범한 남자였고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안소영이 결혼 보다 아이를 갔고 싶다는데는 그녀의 가족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안소영은 늘 부모를 부양하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우리 엄마나 내 동생은 나를 늘 주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나는 늘 그들에게 줘야만 했다. 내가 힘들때 나를 지켜주려는 생각을 안 해 부모 형제에 실망을 했다"고 전합니다.

 

남은 생을 살려면 남이 아닌 내 핏줄, 내 자식이 필요하단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상황이 결혼을 할 순 없었다. 그냥 아이만 낳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며 미혼모가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시대적으로 한국 정서가 미혼모에 대해 불신이 있던 시절이어서 결국 미국으로 떠나게 된 것인데요.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 식구들의 생계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선배 연기자의 사업에 투자를 했다. 하지만 사업이 망하면서 그녀는 투자한 돈을 모두 날려버린 것도 모자라, 빚잔치까지 해야 했습니다.

 

안소영은 미국에서 모피 상점과 명품 숍,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생활했습니다. 한국에서 사업 실패 후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모자의 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모든 것의 중심은 아들이었다. 아이 때문에 다니고 있던 어학원을 그만둘 정도였다고 합니다.

 

안소영은 한국에 귀국해 복귀를 다짐하게 되는데요. 8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것은 주위 사람들의 권유와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 때문있습니다. 녀가 귀국해서 처음 시도한 것이 ‘누드’ 촬영이었습니다.

 

그녀의 누드가 더욱 화제가 된 것은 친동생인 안기천씨가 촬영을 했다는 사실. 안기천씨는 프랑스 유학파로 모 대학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었습니다.

 

화보 촬영 이후 들려온 근황으로는 국내에서 김치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정황인데요. 그러면서 조금씩 방송 활동을 늘려가며 자신을 알리고 있습니다.

 

안소영은 2005년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배우로서 출연했으며 2017년 영화 <미옥>에서 김혜수를 돕는 역할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또한 보이스트롯에 출연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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